한국 정부나 사회단체 등 대부분을 신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믿을 수 있는 일을 안 하기 때문이다. 몇몇 대 기업은 장애인 채용, 봉사활동, 기부 등 많은 선행의 일을 함으로써 기업의 이미지의 가치를 올리고, 예전의 부정의 것들을 희석화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것들이 가식이라는 것을...
믿을 필요도 없고, 믿을 가치도 없다. 믿을 것들은 나 자신뿐이다.
속임을 많이 당한 사람들은 이 말에 동감한다. 아니 확신한다. 행동도 그렇게 한다. 왜냐하면 다시는 속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더욱 강화하고 벽을 친다. 사람을 불신한다. 그래도 사람야 사는 세상이니깐 속아주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뿐이다.
나는 인간은 본성이 정해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변할 수 있겠지만, 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각자 사람을 보고 내가 정한다. 그것이 선입관이 될 수는 있겠다. 왜냐하면 내 기준에서 보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를 것이지... 그 다름은 옳든지 그르든지의 방식이 아니다. 그냥 다를 뿐이다.
누가 사기 치거나 도박을 했다고 가정하자. 그 사람이 다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 자숙하겠다고 말했다고 가정하자. 그럼 믿을 사람이 있겠는가? 또한 2번 3번 걸려서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의 수가 상당하다면 당신은 그 사람이 정말 자숙으로 사람이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두 부류가 있겠다. 변화할 수 있다는 사람들의 모임과 변화할 수 없다는 모임... 나는 그들이 잘했고 못했고 비판하지 않는다. 다만 다를 뿐이므로 그들의 의견을 수렴할 것이다.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그런데 내 생각은 절대로 변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변화의 수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또 범죄를 저지른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 속담이 왜 만들어졌을까? 괜히 허황된 이야기로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이야기일까? 그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삶과 경험이 묻어져 나오는 것이 바로 속담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으므로 다시 속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금방 잊어버린다. 그 사람이 불법을 저질렀다면, 낙인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은 잘못됐다는 사실로 그 사람을 피해야 하는데 망각하여 피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참..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속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그 사람의 확신의 정도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바람피우는 연인에게 속임을 당하고도 매달리는 사람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토록 사람을 무디게 만드는가? 감정이란 인간의 최대 약점이다. 이것을 이용해서 속이는 사람도 있다. 악하고 고질적이다. 감성 마케팅이 왜 나왔겠는가?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어느 상품에 감정 이입시켜서, 판매하는 고도 심리전략이다. 사람들은 맥없이 무너져간다. 감성 마케팅은 사람을 상대로 실로 엄청난 이득을 얻은 셈이다.
어떠한 외적인 것들의 요소들로 인하여 속고 속임의 연속인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게 하면 된다. 저 사람은 저러니깐 결국 저럴 것이다.라는 강력한 확신이 있어야 자신을 철저히 보호할 수가 있다. 단, 나만의 확신이 아니라 모든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확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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